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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당시 남극에는 29개 국가에서 상주기지 39개, 하계기지 36개 등 총 75개 기지가 운영되고 있었으며,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아르헨티나 등 8개 국가가 2개 이상의 상주기지를 보유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세종기지에 이은 두 번째 과학기지를 남극대륙 내에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2009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선 아라온호를 남극해로 출항시켰습니다. ‘세계의 온 바다를 누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아라온호의 첫 임무는 쇄빙능력 시험과 남극대륙기지 건설을 위한 후보지 조사였습니다.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 쇄빙선 아라온호 ]


극지연구소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세 번의 공청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남극대륙 동남단 로즈(Rose)해 인접 지역인 테라노바베이의 브라우닝(Browning)산을 건설지로 낙점, 국민공모를 통해 ‘남극장보고과학기지(이하 장보고기지)’로 기지 명칭을 확정하고 같은 해 11월 실시설계 및 시공 적격자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선정했습니다.

이로써 세종기지에 이어 두 번째 극지 건설의 도전을 시작한 현대건설은 즉각 장보고기지의 실시설계 작업에 돌입하는 한편 극지연구소·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 13개 기관과 정밀조사단을 구성, 2011년 2월 2일부터 14일에 걸쳐 실시설계 자료 확보를 위한 두 번째 정밀조사를 수행해 현지 건설 환경을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장보고기지가 위치할 브라우닝산은 2만 1000㎡에 이르는 비교적 넓은 부지에 평탄한 지형을 갖추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바람이 강하고 강설량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브라우닝산의 풍속은 순간최대 초속 64.9m로 시속으로 계산하면 항공기의 이륙속도와 비슷한 223.6km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12월 말부터 2월 말까지의 짧은 여름을 감안하면 연간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날은 65일이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인근 로즈해와 남극을 가로지르는 남극횡단산지(Transantarctic Mountains)의 영향으로 저기압이 자주 발생하며, 이는 강한 하강기류인 산곡풍과 장벽풍의 원인이 됐습니다. 심지어 인근에서 집단서식하고 있는 일명 ‘남극도둑갈매기’ 스쿠아(Skua)의 영향도 건설 계획에 반영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몸집이 큰 스쿠아의 체중은 2kg에 달하며 호전적 성향이 강해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삼태극으로 남극의 혹한과 맞서다

현대건설은 현지에서 실시한 정밀조사 결과를 설계에 반영하는 한편 연간 65일여밖에 작업 가능일이 나오지 않는 브라우닝산의 기후를 고려해 세밀한 작업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장보고기지의 설계에는 남극대륙 내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첫 과학기지로서 대표성과 상징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천지인(天地人)의 세 방향성을 수용할 수 있는 삼태극의 모티프를 적용했습니다. 장보고기지의 세 방향성은 대기관측(天), 지구물리연구(地), 생활·유지관리(人) 등으로 기능에 따라 공간을 효율적으로 분리했으며, 강풍에 대한 적응력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었습니다.

장보고기지의 평면계획을 수립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안전성의 확보였습니다. 남극의 극저온 및 저습 환경에서 발생빈도가 높은 화재와 비상상황에 대비해 피난 동선을 최대한 단축했다. 또한 최초 건축 시의 제한된 공사기간을 고려해 모듈러 공법을 적극적으로 반영했습니다.

총 면적 4660㎡에 이르는 장보고기지의 공사는 총 2단계에 걸쳐 계획됐습니다. 2012년 12월 말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의 1단계 공사에서는 건설인력이 상주할 수 있는 가설 건물을 먼저 건설한 후 본관동·정비동·발전동·저유시설 및 하역부두 등 주요 시설물의 구조체와 외장패널을 차례로 시공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내부 마감공사를 비롯해 열병합·태양광·풍력 등 발전시설, 담수화 시설, 위성통신, 기계배관 등의 각종 설비 공사는 독립연구시설 건립과 함께 2013년 12월 말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의 2단계 공사에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설계와 세부 일정을 확정하고 본격적인 공사 준비에 들어간 현대건설은 1단계 공사를 반년여 앞둔 2012년 6월부터 인천 송도 글로벌캠퍼스 부지에서 실제 건설에 사용될 자재와 모듈을 이용해 사전 가조립을 시작했습니다. 두 달여에 걸쳐 몇 번씩이나 반복된 가조립은 세종기지 건설 때와 마찬가지로 사전에 건설 과정을 충분히 시뮬레이션해봄으로써 현지에서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남극장보고기지의 완공과 두 번째 극지 건설

2012년 12월, 현대건설은 1단계 건설단 파견을 시작으로 두 번째 극지 건설 도전에 나섰습니다. 현대건설 115명의 건설단을 포함, 극지연구소 연구인력 등 총 300여 명을 실은 아라온호와 1만 5000톤에 달하는 건설자재와 중장비를 실은 화물선 수오미그라트(Suomigracht)호가 나란히 남극에 도착한 것은 2012년 12월 11일. 도착 즉시 현대건설의 장보고기지 1단계 건설단은 건설지에서 1.2km 정도 떨어진 테라노바베이 연안에 수오미그라트호를 정박하고 헬기 및 해빙 위에서 육지까지 자재 운반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수오미그라트호가 정박한 위치는 해빙을 가르고 근접할 수 있는 최단거리였습니다. 원활하고 안전한 해빙 위 운반을 위해서는 해빙이 적정한 두께와 강도를 유지해야 했는데 언제 불안정한 상태가 될지 몰라 매일 해빙 온도·두께·상태 등을 확인하며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건설단은 2개 조로 나눠 24시간 내내 최우선의 하역 작업과 현지 체류를 위한 가설건물 공사를 3주 동안 계속했습니다.

남극에 도착한 후 한 달간은 그런대로 날씨가 좋아 일정이 순조로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유명한 남극의 블리자드가 덮쳐왔습니다. 시속 51㎞ 이상의 눈보라를 몰고 다니는 블리자드가 불기 시작하면 시정(視程)이 150m 이하로 떨어져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장보고기지 1단계 건설단은 본관동과 발전동, 정비동 등 주요 건물의 기초공사와 철골 · 외장패널 설치 등의 주어진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고 이듬해 3월 서울로 복귀했습니다.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2013년 11월 11일에는 150여 명의 건설단 본진이 인천공항을 출발함으로써 2단계 공사의 장도에 올랐습니다. 현대건설은 당초 예상보다도 작업 가능일이 많지 않고 작업 생산성이 높지 않던 1단계 건설의 경험을 참고해 당초 계획보다 45일 정도 앞당겨 두 배의 인력을 투입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여가 지난 2014년 2월 12일 오전 10시, 역사적인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준공식을 거행했습니다. 현대건설에서 파견한 2단계 공사 건설단은 3월 초까지 장보고기지에 머물면서 공사를 마무리한 후 극지연구소에서 파견한 제1차 월동대에 기지를 인계함으로써 두 번째 극지 건설 도전의 여정을 매듭지었습니다.

극지연구소는 현재까지 총 3차에 걸쳐 장보고기지에 월동대를 파견했으며, 다양한 연구 프로그램의 운영과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