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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작가 박상준의 북촌기행 시리즈 #3] 북촌로와 북촌로5길

2023.04.25 5min 12sec

지하철 3호선 현대건설역. 서울교통공사가 진행한 '지하철 역명 유상병기 사업자 공모'로 인해 지난 9월부터 안국역에 붙여진 새로운 부역명입니다. 현대건설인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일상공간인 안국역. 이곳의 숨은 이야기와 매력을 전문가의 시각으로 만나봅니다.



건축의 상상력, 북촌의 경이로움을 짓다


저는 여행을 하면 그 도시의 대표 건축물을 가장 먼저 찾습니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공간을 감각할 수 있는 건, 건축만이 줄 수 있는 신비로운 경험이니까요. 더불어 도시의 상징적 심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북촌 골목골목에도 켜켜이 탐스러운 건축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현대 건축가들이 한옥보존지구의 제약을 상상력으로 돌파하는 과정은, 메시의 드리볼이나 손흥민의 스프린트만큼 황홀합니다. 



북촌, 건축 여행의 버킷리스트


혀낻건설 아트콜라보 캠페인 2탄 앞에서 인증사진을 촬영하는 시민들


이번 북촌 산책의 주제는 건축입니다. 북촌 가운데 북촌로와 북촌로5길을 중심으로 소개할까 합니다. 대중교통은 지하철 3호선 안국 현대건설역 2, 3번 출구가 출발점입니다. 출구로 나가기 전 파랑 고래와 분홍 복사꽃의 몽환적 그림이 보입니다. 이 매력적인 작품이 광광 작가의 *‘꿈을 짓다’라는 일러스트이고, 현대건설이 진행 중인 아트콜라보 캠페인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림 하단의 ‘사막의 장미’에 시선을 빼앗긴 까닭입니다. 정확히는 사막의 장미를 형상화한 건축가 장 누벨의 카타르 국립박물관이겠죠.

*<꿈을 짓다>는 2023 현대건설 아트 콜라보 캠페인 두 번째 작품으로 5월말까지 게재 예정입니다.


현대건설이 시공한 카타르 국립박물관의 공사 모습. 원형 패널을 조합해 만든 이 건축물은 ‘사막의 장미’를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구조로 21세기 걸작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 현대건설이 시공한 카타르 국립박물관의 공사 모습. 원형 패널을 조합해 만든 이 건축물은 ‘사막의 장미’를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구조로 21세기 걸작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


카타르 국립박물관은 유현준 건축가의 유튜브 채널(설록현준)에서 보고 제 버킷리스트에 넣어둔 건축물입니다. 유 건축가가 ‘경이로운 구조 기술력’에 높은 점수를 줬던 게 기억납니다.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았다’고도 덧붙였고요. 언젠가 카타르의 ‘사막의 장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제 꿈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건축은 다른 말로 ’꿈을 짓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안국역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최고 사법기관으로 김희수 건축가가 설계했습니다

[ 안국역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최고 사법기관으로 김희수 건축가가 설계했습니다 ]


카타르는 아니지만 북촌에도 제 버킷리스트를 차지하던 건축 명소가 여럿 있습니다. 4~5월에만 볼 수 있는 자연 풍경도 산책의 즐거움이고요. 첫 번째 장소는 김희수 건축가가 설계한 헌법재판소입니다. 흔한 관공서 건물 같지만 1993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장방향의 석조건물은 ‘법’의 이미지를 닮아 반듯합니다. 지붕에는 돔을 이고 있고요. 하지만 내부를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나라 최고령 백송이 아쉬움을 달랩니다. 헌법재판소 안 재동 백송은 600년 수령으로 추정합니다. 약 14m 높이의 이 나무는 땅에서부터 두 갈래로 뻗어 높게 자라는데, 하얀 색 수피가 진귀합니다. 5월에는 특히 ‘여린 솔방울’ 모양의 꽃이 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백송 공원 북쪽 담 너머는 한옥 지붕이 보이는데요. 윤보선길 편에서 이야기한 그 윤보선가입니다. 비록 담장에 반쯤 가려지기는 했지만, 윤보선가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장소일 겁니다.



제약을 넘어서는 현대건축의 기지


복합문화공간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는 실제로 400년간 북촌을 지켜온 고목을 살린 건축으로 멋스러움을 더합니다

[ 복합문화공간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는 실제로 400년간 북촌을 지켜온 고목을 살린 건축으로 멋스러움을 더합니다 ]


헌법재판소 정문을 지나서는, ‘아름다운 가게’ 앞에서 왼쪽 골목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헌법재판소와 울타리를 사이에 둔 고요한 길입니다. 백송이 보이는 요거트 맛집 ‘땡스오트 안국’의 노천에서 잠시 머물다 가셔도 좋겠네요. 첫 번째 모퉁이를 돌면 복합문화공간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가 보입니다. 건축가 김헌이 설계한 건물로 갤러리와 레스토랑 등이 주변 풍경을 품습니다. 골목과 마당은 경계를 두지 않았는데요. 400년 향나무 고목 한 그루가 굳건히 버티고 선 덕분에, 도시의 소란으로부터 차분히 비켜설 수 있습니다.


골목은 북촌로5길에서 다시 큰 길의 오거리와 만납니다. 무척 흥미로운 건축의 교차점입니다. 우선 남서쪽에는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조민석 건축가의 ‘송원 아트센터’가 있습니다. 북쪽 예각에는 ‘코너 갤러리’가 터를 잡고, 곁으로 자그마한 한옥과 ‘우드 앤 브릭’이 나란히 있습니다. 세 건물은 별개일 것 같지만 하나의 의도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설계를 맡은 황두진 건축가는 <한옥이 돌아왔다>라는 책에서 ‘세 건물이 서로 대비되면서··· 무수하게 다양한 경관이 연출된다’고 했는데요. 한옥과 양옥, 재료와 형태의 변주가 길에 활기를 더합니다. 


건축가 유태용이 설계한 서미갤러리를 2013년 건축가 최욱이 리노베이션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의 다양한 문화공간 중 하나인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건축, 현대미술에 관한 1만8000여 권의 전문서적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 건축가 유태용이 설계한 ‘서미갤러리’를 2013년 건축가 최욱이 리노베이션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의 다양한 문화공간 중 하나인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건축, 현대미술에 관한 1만8000여 권의 전문서적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


코너 갤러리에서 2시 방향, 즉 우드앤브릭 건물 뒤편 골목에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가 위치합니다. 원래 건축가 유태용이 설계한 ‘서미 갤러리’였고, 200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한 건물입니다. 황두진 건축가가 ‘코너 갤러리’와 ‘우드 앤 브릭’ 사이에 작은 한옥 한 채를 두어 북촌의 색채를 드러냈다면, 옛 서미갤러리는 검은 전벽돌과 건물 2층에 한옥 사랑채를 둔 것이 건축가의 기지입니다. 이를 건축가 최욱이 2013년에 리노베이션 했습니다. 

*평일에는 현대카드 소지자 외에도 현대카드 다이브 앱 설치 시 입장이 가능합니다.


최욱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디자인한 건축가이기도 한데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건축 인생에 전환점이 된 프로젝트로 꼽기도 했습니다. 한옥과 양옥이 어우러진 형태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ㄷ’자형의 마당은 삼면에 유리를 두어 적극 활용했고요. 라이브러리는 디자인, 건축 서적 등 약 1만 7000권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책장 안에 있는 현대카드 COMMENT(코멘터리)를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건축가 최욱 vs 조병수


건축가 최욱의 리노베이션 건물은 북촌에 또 있습니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 약 200m 거리에 있는 북촌 ‘설화수의 집’입니다. 가는 길에는 한옥 빙수 맛집인 ‘부빙’ 가회점을 들러보세요. 팥빙수, 딸기, 호지차, 옥수수, 행운쑥쑥 등 다채로운 빙수가 반깁니다. 계절 빙수도 별미고요. 지난 4월에는 MBC <놀면 뭐하니> 전국간식자랑 편에도 나왔던 곳입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북촌 설화수의 집’은 ‘서울 우수 한옥 디자인’에 선정되는 등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북촌 설화수의 집’은 ‘서울 우수 한옥 디자인’에 선정되는 등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 


따뜻한 차 한 잔을 원한다면, 오설록 티하우스가 있는 북촌 ‘설화수의 집’으로 곧장 이동합니다. ‘설화수의 집’은 1930년대 한옥과 1960년대 양옥이 하나의 장소를 이룹니다. 최욱 건축가의 제안으로 기존 한옥을 보존하고, 뒤쪽의 양옥을 포함한 구조로 거듭났다고 하네요. 앞쪽 한옥은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가 자리하고, 뒤쪽 양옥은 오설록 티하우스가 중심입니다. 다만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를 양옥 1층까지 확장해 두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했습니다. 층과 층, 건물과 정원을 오가보면 옛 집의 문이나 자개 장식장처럼, 그 곳에 살았던 옛 사람의 흔적이 조곤조곤 말을 걸어옵니다.  


2018년 3월 개관한 예올 북촌가는 1·2층 전시관, 3층 라이브러리를 갖추고 전통 문화를 알리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 2018년 3월 개관한 예올 북촌가는 1·2층 전시관, 3층 라이브러리를 갖추고 전통 문화를 알리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 


북촌 ‘설화수의 집’에서 약 20m 떨어져 있는 ‘예올 북촌가’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ㅁ자 집’으로 유명한 조병수 건축가가 리노베이션 했습니다. 도로변 4층 상가 건물은 기본이 되는 벽돌의 골격을 살려 고쳤는데요. 정면은 건물 바깥으로 덧댄 유리창이 특징입니다. 자세히 보니 창문 프레임이 없고, 가장자리에 허물다만 벽돌 벽이 날것 그대로 드러납니다. 내부 역시 1층과 2층 사이 천장을 철거하고 콘크리트 보만 남겼습니다. 그 위에 목재 박스를 얹는 형태로 2층 전시장을 꾸렸습니다. 간결하게 정리된 구조는 건물이 가진 정체이자 개성의 상징일 테지요. 4층의 양옥 또한 북촌의 집이라 말하는 듯하고요. 그래서 건축가는 이 건물을 우리네 ‘막사발’에 비유한 것일까요.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와 북촌 ‘설화수의 집’은 같은 건축가의 다른 솜씨를 비교할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또 ‘설화수의 집’과 ‘예올 북촌가’는 서로 다른 두 건축가가 옛 건물을 고쳐 짓는 방식을 대비해 볼 수 있어 흥미진진합니다. 마침 두 건축가는 2021년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집의 대화: 조병수x최욱>이라는 전시를 함께 갖기도 했었지요. 당시 전시 인터뷰 자료가 ‘DDP SEOUL’ 유튜브 채널에 있으니 보고 가시면 유익합니다.



마음 속 오월의 집


 영화 <암살> 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백인제 가옥’은 한옥과 일본식 주거공간이 합쳐진 근대식 양식이 이채로운 공간입니다

[ 영화 <암살>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백인제 가옥’은 한옥과 일본식 주거공간이 합쳐진 근대식 양식이 이채로운 공간입니다 ]


물론 북촌에는 권세를 자랑하던 큰 한옥도 존재합니다. 북촌로7길에는 ‘백인제 가옥’이 있습니다. 부빙과 북촌 ‘설화수의 집’ 사이 골목입니다. 1906년부터 12채의 민가를 사들여 1913년에 완공한 집은, 건물 외관의 유리문과 서양식 거실, 일본식 장마루, 이층이 있는 사랑채 등 근대식 양식이 이채롭습니다. 실은 매국노 이완용의 조카인 한성은행 전무 한상룡이 지었지요. 북촌의 큰 한옥은 대체로 친일파의 족적이 있습니다. ‘백인제 가옥’이라는 이름은 훗날 백병원의 백인제 박사가 매입해 붙었습니다. 현재는 서울시가 사서 시민들에게 개방해 하루 네 차례 약 30분 정도 도슨트 투어가 있습니다.


[ 경기고등학교 건물이 도서관으로 바뀌어 운치를 더하는 정독 도서관. 서울시 벚꽃 명소 중 하나로 봄이면 상춘객들로 더욱 붐빕니다 ]

[ 경기고등학교 건물이 도서관으로 바뀌어 운치를 더하는 정독 도서관. 서울시 벚꽃 명소 중 하나로 봄이면 상춘객들로 더욱 붐빕니다 ] 


‘백인제 가옥’ 동쪽 담 너머는 ‘정독 도서관’입니다. ‘정독 도서관’은 1938년에 지은 옛 경기고등학교 건물로 근대 건축물(등록문화재)입니다. 교정을 물들이는 봄날의 벚꽃을 떠올리는 분이 많지만, 오월 등나무 파고라의 정취도 뒤지지 않습니다. 옛 교정의 잔디마당에는 책 읽는 정원을 마련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요. 연보라색 등나무 꽃자루 그늘에서는, 책장을 넘기는 바람 소리마저 낭만적입니다.


정독도서관 진입로에 해당하는 ‘홍현:북촌마을 안내소’도 건축 명소입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설계한 윤승현 건축가와 이지선 건축가가 디자인했습니다. 예전에는 25m의 콘크리트 옹벽이 있어 갑갑한 길가였지만, 안내소가 자리하며 훤하고 말끔해졌습니다. 특히 동쪽 공중화장실은 지상에 절반 쯤 떠있는 붉은 벽돌 건물로, 그 형태와 빛의 그림자가 일품입니다.


마지막으로 북촌마을안내소 옆 계단에서 잠시 고민합니다. 가까이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한 ‘아트선재센터’가 있고, 그 곁에는 민현준 건축가의 대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있으니까요. 또 북촌로를 따라 삼청공원까지 가면 <아날로그의 반격>의 작가 데이비드 색스가 ‘서울 삼청공원의 도서관에서 미래를 보았다’ 말한 이소진 건축가의 ‘삼청동 숲속 도서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북촌의 보물들은 또 언젠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요.


안국역 3번출구에서부터 현대건설 계동 사옥, 헌법재판소,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나무 모던 앤 컨템포러리, 정독도서관, 백인제 가옥, 북촌 설화수의 집, 북촌 예올가


카타르 사막의 건축에서 시작해 북촌 공중화장실에서 끝을 맺는, 오늘의 북촌 건축 여행은 이 정도로 마무리합니다. 봄 햇살을 누리기 좋은 계절입니다. 동요의 한 구절처럼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 세상’이죠. 그 때 우리들이 꼭 어린이만일 까닭은 없습니다. 맑고 푸른 오월, 따뜻한 북촌의 골목을 걸으며 내 안의 소망과 행복이 머물 수 있는, 마음 속 작은 집도 하나 지어보시면 어떨까요? ‘경이로운 구조 기술력’은 이럴 때 더욱 필요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글. 박상준

대학에서는 조경학을 전공하고, 여행주간지 〈프라이데이〉와 영화주간지 〈씨네버스〉 취재기자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여행작가로 활동 중이며 한국관광공사 등에 일상과 밀착한 여행 정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서울 계동과 부암동을 좋아합니다. 저서로는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오!!! 멋진 서울> <엄마, 우리 여행가자> <다른 제주에 가다> <울릉도100배 즐기기> 등이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현대건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이슬기 / 지도 일러스트=김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