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이열치열이라지만 여름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 냉면만 한 음식도 없습니다. 시원한 육수 한 모금 크게 들이켰을 때 입안 가득 찬 감칠맛이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재미도 자꾸 냉면을 찾게 되는 이유. 슴슴하거나 짭쪼름하거나, 냉면은 각양각색의 맛으로 침샘을 자극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 또 있습니다. 50여 년, 길게는 100여 년의 세월 동안 냉면집이 품은 오랜 이야기죠. 깊은 역사가 그 맛을 더하는 전국 노포(老鋪) 냉면 맛집을 소개합니다.
피란민이 만들어낸 부산의 맛, 밀면
Since 1919 부산 남구 우암동 ‘내호냉면’
빨간 양념장이 올라간 부산 밀면은 묘하게 함흥냉면과 닿아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부산 밀면 이야기는 ‘함흥냉면’과 ‘삯국수’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부터 시작됩니다. 1950년 6월, 기습 남침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해 부산이 피란길의 종착지가 됐던 역사와 관련이 있죠. 함흥·흥남 지역 10만여 명의 피란민이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내려와 도착한 곳이 거제 장승포였으니 함경도의 농마국수와 이들이 부산에 정착해 만들어낸 밀면은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이북에는 감자 전분을 가져가면 식당에서 품삯만 받고 국수를 만들어주는 ‘삯국수’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는데, 우암동 내호냉면에서 동항성당 하 안토니오 신부님의 의뢰를 받아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7대3의 비율로 섞어 만들어낸 것이 밀면의 시초로 알려져 있죠. 내호냉면이 부산에서 개업한 시기는 1953년이나 실제 역사는 1919년 이북에서 개업한 동춘면옥으로부터 다져야 합니다. 동춘면옥의 주인장이었던 이영순 할머니가 전쟁 통에 피란을 와서 같은 상호로 식당을 열었다가 10여 년쯤 되던 해에 고향인 흥남면 내호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내호냉면’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니까요. 밀면 원조 식당임에도 상호에 ‘냉면’을 사용하는 것은 식당의 뿌리가 냉면집이었던 동춘면옥이고, 초창기 메뉴 역시 밀면이 아닌 냉면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가 되살려낸 진주냉면
Since 1945 경남 진주 이현동 ‘하연옥’
진주는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비빔밥과 냉면이 모두 탄생한 유일한 도시로 다른 지역에 비해 화려한 고명이 인상적입니다. 음식이 화려하다는 것은 소비 주체가 돈 있고 권세 있는 지배계층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 진주냉면은 지역 양반과 관리들이 기방에서 즐겨 먹던 음식인데, 교방과 기생조합 권번의 해체에 따라 쇠퇴의 길을 걷습니다. 그나마 기방에서 나온 숙수들이 진주 중앙시장에 냉면집을 개업해 명맥을 이었으나, 이마저도 1966년 2월 발생한 화재로 끊어지게 되죠. 분명 문헌에는 남아 있으나 만드는 이 없는 진주냉면을 되살린 계기는 부산방송과 진주시, 한국전통음식문화연구원의 김영복 원장이 합작해 2000년 방영한 다큐멘터리 <진주냉면>입니다. 이렇게 온고지신한 조리법은 서부시장에서 ‘부산냉면’을 운영하던 황덕이 할머니에게 전수됐고, 간판도 ‘진주냉면’으로 바꾸게 됩니다. 이후 막내딸이 물려받은 본점은 본인의 이름을 딴 ‘하연옥’으로, 아들이 물려받은 가게는 며느리의 이름을 딴 ‘박군자 진주냉면‘으로 계보가 나뉘게 되었죠. 평양냉면에 익숙한 이들은 해물 육수의 감칠맛과 그릇 가득 올려진 육전과 계란 지단, 편육 등의 고명이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특색이 분명한 만큼 호불호 역시 강한 편이나, 진주냉면의 역사를 알고 먹으면 오히려 맛의 균형과 완성도가 탄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평양냉면 역사의 산증인
Since 1946 서울 중구 주교동 ‘우래옥’
우래옥의 전신은 평양에서 명월관이란 식당을 운영하던 장원일·나정일 부부가 광복 직후 남하해 1946년께 서울에 문을 연 서북관입니다. 한국전쟁 때 피란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열었다’고 해 우래옥(又來屋)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대부분의 이북 냉면집들이 한국전쟁 당시 피란 내려와 개업한 것에 반해 이 집은 광복 직후 문을 연 서북관으로부터 역사가 시작되니 현존하는 최고(最古) 업력의 평양냉면 식당입니다.
평양냉면은 양념과 조미료에 좌우되는 음식이 아니다 보니 맵고 달고 짜고 신맛이 일체 배제된 슴슴한 절제미가 강조되는 음식입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은은하게 올라오는 메밀향, 채로 썰어낸 배의 달큰함, 맑은 육수를 들이켠 후의 육향 등이 하나하나 제대로 느껴집니다. 우래옥은 오로지 한우로만 육수를 내기에 시중의 다른 평양냉면보다 향이 진하기로 유명합니다. 밋밋하다고 해 평양냉면을 멀리 하는 이들에겐 ‘평냉 입문식당’으로 추천할 만합니다.
우래옥 본점에는 단골들만 주문하는 비밀 메뉴가 있으니 이북의 여름 별미인 ‘김치말이’입니다. 보통 김치말이라 하면 붉은 김칫국물로 말아낸 하얀 소면을 떠올리기 쉬우나, 원형에 가장 가깝게 재현한 이 곳의 김치말이는 밥이 말아져 있습니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해주냉면
Since 1952 경기 양평 옥천면 ‘옥천냉면 황해식당’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서울에 안착해 대중의 인기를 얻어 성장했지만, 북한 황해도 해주 지역의 냉면은 인구가 많지 않은 백령도와 경기도 양평 옥천 지역에 자리 잡아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절대적인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오히려 이북의 지명으로 불리는 데 반해 해주냉면은 남한의 지명을 따 ‘백령냉면’ ‘옥천냉면’으로 불린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두 냉면은 모두 황해도 해주에서 나왔으나 각자 특성이 강해 ‘배다른 형제’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가장 알아주는 곳은 6번 국도 대로변에 자리한 ‘옥천냉면 황해식당’입니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 금천에서 부산으로 피란온 부부는 종전 후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경기도 양평으로 올라왔습니다. 옥천(玉泉)이라 불리는 곳에 잠시 거처를 정하고 궁여지책으로 이북에서도 만들었던 냉면을 팔게 되니 이 시기가 1952년이요, 바로 옥천냉면 황해식당의 시작이자, 이북 음식인 해주냉면이 경기도 양평의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입니다. 이 식당에서는 여타 냉면집에서 만나기 힘든 존재감 강한 곁들임 메뉴가 존재하니 바로 큼지막하게 부쳐내 위장을 든든하게 하는 완자입니다. 통통한 메밀면에서 나오는 구수한 맛과 조선간장의 짭조름함, 돼지고기 육수의 감칠맛 등을 한층 더 조화롭게 해주는, 2년 이상 염장해 숙성시킨 무로 만들었다는 무짠지도 별미입니다.
대한민국 함흥냉면의 전설
Since 1953 서울 중구 ‘오장동 흥남집’
‘오장동 흥남집’의 창업주인 노용언 할머니는 함흥 출신으로 흥남부두 철수 작전 당시 거제도와 부산을 거쳐 서울로 올라와 1953년에 식당을 열었다고 전해집니다. 70여 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4대째 가업을 잇고 있으니 흥남집의 역사가 곧 남한의 함흥냉면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통상 함흥냉면은 비빔으로 먹기 마련이고, 비빔은 면에 숙성된 양념회만 얹어 나오는 반면 이 집은 비빔냉면이라도 특제 비법 소스인 ‘간장 육수’가 자작하게 담겨 나옵니다. 간장 육수는 뭉치기 쉬운 고구마 전분 국수 타래를 부드럽게 풀리게 하고, 양념이 고루 비벼지도록 하는 것으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집의 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설탕과 참기름을 ‘다소 과하게’ 사용하는 것. 우선 면에 설탕을 뿌려 단맛이 배게 한 다음 식초와 겨자를 둘러 초벌로 비비고, 참기름을 두른 후 제대로 비벼내면 됩니다. 면에 스며든 달달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매콤한 양념이 치고 들어오고 그 뒤를 이어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대미를 장식합니다. 함흥 비빔냉면의 매운맛은 물로는 헹궈내지 못하는데, 냉면 한 젓가락 먹고 따뜻한 육수를 한 모금 머금으면 신기하게도 매운맛이 순해집니다.
글=권오찬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