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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여는 클래식 가이드

2021.02.09 3min 1sec

 지휘자 손 연출 사진 - 게티이미지


80년 역사상 처음, 무관중으로 치러진 신년음악회 

새해가 시작되면 각국에서 신년음악회가 열립니다. 그중 1월 1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는 많은 이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클래식 공연. 공연장을 채우는 화려한 꽃장식도 이날의 전통 행사 중 하나입니다. 해마다 콘서트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되고, 당일 녹음한 음반도 인기리에 판매됩니다. 오스트리아 역시 코로나19로 대면 공연 금지 등 정부의 제재가 있었지만, 신년음악회만큼은 예외를 뒀죠. 사상 처음 무관객 공연으로 열린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전 세계 90개국에서 생중계됐습니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연주자들이 모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독립성을 이유로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고 객원 지휘자를 초빙해 연주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년음악회의 지휘를 누가 맡는지도 팬들에게는 큰 관심사입니다. 올해는 50여 년 동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인연을 이어온 이탈리아 거장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가 지휘를 맡았습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가 유명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해마다 다양한 이벤트(박수 유도, 단원들의 합창 등)를 준비해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연도별 새해 음악회를 검색하면 이전 공연까지 관람할 수 있으니, 연초가 지나기 전에 나만의 방구석 신년음악회를 가져보길 추천합니다.


신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 요한 슈트라우스 
빈 필하모닉 프로그램은 빈의 대표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무곡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요한 슈트라우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작곡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그러나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도 많은 왈츠곡을 작곡해 두 사람 모두 유럽에서 사랑받는 음악가입니다. 서로 우위를 다투는 경쟁자로서 ‘슈트라우스 대 슈트라우스’라는 기사까지 나올 정도. 두 부자의 활약은 눈부십니다. 특히 쿵짝짝(강약약) 3박자가 도드라져 춤의 반주곡으로 여겨진 왈츠를 무도회장 이 아닌 콘서트홀에서 감상하는 예술로 격상시켰죠.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왈츠의 왕’으로 만든 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테츠키 행진곡>은 신년음악회에서 빠지지 않고 연주됩니다. 도입부만 들어도 친숙한 <라테츠키 행진곡>의 흥겨운 멜로디는 절로 몸을 움직이게 만들죠. 실제로 이 곡이 연주될 때면 관객들이 객석에서 손뼉을 치며 호응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도 자주 연주되는 곡입니다. 봄이 오는 기쁨을 담아내 설레는 봄날의 풍경을 연상케 합니다. 특히 새소리를 닮은 플루트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보통 관현악 곡으로 연주되지만, 원래는 소프라노를 위해 작곡된 노래였습니다. 소프라노의 화려한 기교가 더해진 버전도 들어보고 더 마음에 드는 봄의 소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클래식 초심자의 귀도 사로잡는 드보르자크
체코 출신의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도 신년음악회의 단골 연주곡입니다. 드보르자크는 체코 보헤미안 지방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육점과 여관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기대로 가업을 이을 준비를 했지만, 그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알아챈 친척의 도움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죠. 드보르자크는 국민 음악가로 손꼽히던 스메타나에게 음악을 배웠고, 30대에는 브람스의 눈에 띄어 악보집을 발간합니다. 49세에는 프라하 음악원 교수로 임명됐고, 곧이어 뉴욕 국립음악원 원장직을 제안받아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때 미국에서 머물며 작곡한 곡이 바로 <신세계로부터>입니다.
고향 보헤미아의 민속 선율에 관심이 많았던 드보르자크는 미국에서도 흑인 영가나 인디언 민요에 매료됐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을 의미하는 제목의 <신세계로부터>는 체코풍의 곡이라는 평을 듣죠.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고요하게 시작했다가 웅장한 팡파르가 터지는 도입부는 우주 공간을 유영하듯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애틋한 호른 소리로 향수를 일으키는 2악장의 선율은 그립고 따뜻한 공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4악장은 듣고 있으면 쉽게 이미지가 연상돼 공포영화 <죠스>의 OST로 쓰였습니다. 예측 불가능하게 뻗어 나가는 선율, 계속해서 반전되는 분위기,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연주가 영화 음악으로도 손색없는 곡입니다.
브람스의 소개로 당시 유명 출판사였던 짐 로크사에서 악보집을 낸 드보르자크. 첫 성공 이후 짐 로크사는 드보르자크에게 슬라브 무곡 작곡을 요청했다. 드보르자크는 보헤미아의 다양한 민속 무곡 형식을 차용해 두 권의 악보집을 출판했습니다. 아련하고 감미로운 선율이 첫 소절부터 귀를 기울이게 하는 <슬라브 무곡> 2번 E단조를 추천합니다. 피아노와 관현악 버전이 있으니 비교해서 들어봅시다.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극음악 <페르귄트 모음곡>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은 ‘인형의 집’으로 잘 알려진 극작가 입센이 쓴 희곡에 곡을 붙여 만들어졌습니다. 관현악 작품이자 연극을 위해 작곡된 극음악으로 페르귄트라는 제목이 낯설지 모르지만, CF나 다큐멘터리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였죠. 첫 번째 곡 <아침의 기분>의 첫 소절만 들어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친숙한 곡입니다.
희곡 <페르귄트>는 허풍쟁이에 바람둥이 인 페르귄트의 모험담입니다. 일확천금을 꿈꾸고 세계 각국을 떠돌며 온갖 방탕한 생활을 하다 쓸쓸하게 고향에 돌아온다는 고전적인 줄거리지만, 연극이 초연됐을 때 큰 성공을 거뒀죠. 페르귄트가 이집트·터키·모로코 등 각국을 여행하는 풍경, 그곳에서 만난 초록 여인, 원숭이, 단추공, 트롤이 무대 위에 재현되어 객석의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진 그리그의 음악은 극 곳곳에 풍부한 감정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리그는 공연이 끝난 후 8곡을 추려 <페르귄트 모음곡>으로 발표했습니다. 페르귄트의 흥분, 놀라움, 기쁨, 슬픔의 감정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페르귄트가 모로코에서 맞는 새벽 풍경을 그려낸 <아침의 기분>,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신비로운 선율의 <아니트라의 무곡>, 모음곡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 <솔베이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왜 그리그가 ‘북구의 쇼팽’이라는 별명을 얻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새해를 활기차게 여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못다 세운 올해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아무 생각 없이 클래식을 즐기며 바쁜 일상 속 잠깐의 여유를 가져도 충분합니다.



유튜브로 즐기는 방구석 클래식 공연 3


① 2020 신년음악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2020 신년음악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신년음악회 특유의 화려한 꽃장식과 빼곡히 채워진 객석.

또한 빈 곳곳의 풍경을 촬영해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빈 신년음악회 중계 영상의 특징.


② 2021 신년음악회 <라테츠키 행진곡>

2021 신년음악회 <라테츠키 행진곡> 

홀의 아름다움은 여전하지만, 객석은 텅 비었다.

공연 끝자락에 미리 신청한 온라인 관객들이 나타나는 것도 2021년의 이색적인 풍경이다.



③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봄의 소리>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봄의 소리>  

봄의 풍경을 묘사한 곡으로 봄의 설렘과 따뜻함이 물씬하다.

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지휘자의 발동작, 손동작마저 근사한 춤동작처럼 보인다.




글=김수영 <클래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