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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의 탄소 연금술, 미래 연료 ‘e-SAF’

2026.08.25 3min 41sec

하늘 위의 탄소 연금술, 미래 연료 ‘e-SAF’


인류의 이동 방식은 지금 거대한 전환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는 동안, 항공 분야 역시 탄소 중립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과제와 마주했습니다. 전기차의 성공 방정식을 항공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 거대한 여객기가 전기 배터리로 하늘을 나는 모습은 왜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 질문의 해답을 항공 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핵심 대안, ‘지속가능항공유’에서 찾았습니다.  



전기차는 되는데, 전기 여객기는 왜 어려울까?

탈탄소 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전기차는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사정이 다릅니다. 수백 명을 태우고 대륙을 건너는 여객기는 여전히 기존 화석연료 기반 항공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식 형식증명을 받아 상용 운항 중인 전기 항공기는 2인승 훈련기 한 기종(Pipistrel Velis Electro)입니다. 그 이유는 철저한 물리 법칙, 바로 ‘에너지 밀도’의 벽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용화된 리튬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항공유 대비 약 48배가량 낮습니다. 예를 들어 대형 여객기가 소모하는 항공유가 약 100톤이라면, 이를 배터리로 대체할 경우 필요한 무게만 무려 5,000톤에 달합니다. 이 엄청난 무게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연소되면서 사라지는 항공유와 달리, 배터리는 아무리 전기를 소모해도 무게가 1g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결국 항공 탈탄소의 해법으로 떠오른 것은 배터리 기반의 전동화가 아니라, 기존 항공기 엔진과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항공유(Sustainable Aviation Fuel)입니다. 이는 항공 산업이 전 세계를 잇는 이동의 편의성을 유지하면서도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항공유와 리튬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비교  에너지 밀도  12,000Wh/kg  개당 에너지 밀도 250 Wh/kg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에너지 밀도 차이  4  4  4  4  4  4  4  4  약 48배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제트 연료  필요 연료량  항공유 약 100톤  동일 에너지 필요량  약 5,000톤(배터리 48개)



이산화탄소와 수소로 굽는 연료, e-SAF

현재 상용화된 SAF는 폐식용유나 동물성 유지를 원료로 하는 바이오 기반 연료가 주를 이룹니다. 문제는 공급량입니다. 전 세계에서 모을 수 있는 폐자원을 다 합쳐도, 가파르게 늘어나는 글로벌 항공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식량 기반 작물을 원료로 쓰는 방식은 환경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배제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원료 조달 방식이 절실해졌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차세대 대안이 바로 e-SAF(Electro-Sustainable Aviation Fuel)입니다. 이름 그대로 전기로 만든 지속가능항공유로, 산업 공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에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한 청정수소를 합성하여 만들어집니다.  

구체적인 원리는 ‘빵을 굽는 요리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재료는 산업 공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CO)입니다. 매연에서 건져 올린 이 탄소는 단독으로는 에너지를 내지 못하는 베이스 재료인 '밀가루'와 같습니다. 두 번째 재료는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물(H₂O)을 전기분해해 얻은 청정수소(H₂)입니다. 수소는 밀가루와 결합해 반죽을 완성하는 이스트처럼, 탄소를 새로운 연료로 전환하는 핵심 재료 역할을 합니다. 이 두 재료가 공정 플랜트라는 거대한 오븐 속에서 만나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강력한 무탄소 에너지원인 청정수소가 투입되어 포집된 탄소의 분자 구조를 완전히 재조립하는 촉매 반응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기존 석유계 항공유를 대체할 수 있는 합성항공유, 즉 e-SAF가 완성됩니다. 공기 중에 버려질 뻔한 이산화탄소와 물을 섞어 전기로 구워내는 현대판 '탄소 연금술'인 셈입니다. 

 e-SAF 생산 프로세스  ① 원료 확보  ② 합성(연료 전환)  >  ③ 최종 제품  이산화탄소 포집  청정수소 생산  고온·고압 촉매 반응을 통한 분자 재조립  지속가능항공유 (e-SAF)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  H2 청정수소  이산화탄소  수소  물

[이산화탄소 포집과 물의 전기분해를 통한 e-SAF 생산 공정. 포집된 탄소와 청정수소를 합성하여 기존 항공유와 호환 가능한 친환경 연료를 생산합니다.]



앞서가는 규제에 더딘 공장 건립... 글로벌 e-SAF 패권 전쟁의 시작

e-SAF는 이미 전 세계적인 탈탄소 흐름 속에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럽연합(EU)은 'RefuelEU' 규정을 통해 2025년부터 SAF 혼합 의무화를 시작했고, e-SAF의 경우 2030년 1.2%를 시작으로 2050년에는 35%까지 공급 의무 비율을 확정했습니다. 비율을 채우지 못하면 과징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항공사와 정유사로서는 가격 부담에도 구매가 불가피한 연료가 된 셈입니다. 

문제는 규제만 앞서갈 뿐 정작 만들 공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반 항공유의 약 10배에 달하는 생산원가 탓에 누구도 먼저 삽을 뜨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전역에 계획된 40여 개의 e-SAF 프로젝트 가운데 최종투자결정(FID)을 마친 곳은 아직 없습니다. 

세계로 넓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e-SAF 생산시설이 실제 가동 단계에 들어서며 기술적 가능성을 빠르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2023년 가동을 시작한 인피니엄(Infinium)의 ‘프로젝트 패스파인더’는 연간 약 2,300톤 규모로, 이곳에서 생산된 e-SAF가 올해 8월 아메리칸항공의 상업 운항에 공급되며 실제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상업화를 논하기에는 여전히 물리적 규모가 작습니다. 지난 6월 트웰브(Twelve) 역시 워싱턴주에 ‘미국 최초의 상업 규모’를 표방한 플랜트를 가동했지만, 연간 생산능력은 120~150톤 수준에 그치는 실정입니다. 인피니엄이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인 후속 공장 ‘프로젝트 로드러너’가 연 2만 3,000톤 규모로 생산능력을 크게 끌어올릴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빠르게 늘어날 글로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결국 기술적 가능성은 이미 확인됐지만, 이를 시장이 요구하는 대규모 상업 생산으로 키워내는 ‘스케일업(Scale-up)’이 e-SAF 상업화의 진짜 과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이 꺼내 든 카드는 판로와 수익의 안정성을 높이는 정책 지원입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8개국은 2025년 말 'e-SAF 선도국 연합(Early Movers Coalition)'을 결성하고, 5억 유로(약 7,500억 원)를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공장을 짓는 금액이 아니라 생산된 e-SAF를 정해진 가격에 매입을 보장함으로써 민간이 먼저 삽을 뜨게 만드는 자금입니다. 

미국은 정부보다 민간이 앞서 나갔습니다. 연방정부의 보조금이 줄어드는 가운데 개별 주정부가 독자적인 지원책을 꺼내 들며 빈자리를 메우고 있고, 그 위에서 기업들이 먼저 e-SAF 생산 플랜트를 올리고 있습니다. 

중동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풍부한 일사량을 바탕으로 세계 최저가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유럽 공급을 겨냥한 대형 e-SAF 플랜트를 추진하며 공급망의 거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남아공의 사솔(Sasol)은 오랜 합성연료 기술을, 미국의 인피니엄(Infinium)은 실제 가동 실적을 앞세워 각자의 자리를 넓히는 중입니다. 결국 승부처는 서류가 아니라 현장입니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상업 공장을 누가 먼저 짓느냐’라는 엔지니어링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합니다. 그 거대한 글로벌 아레나에 우리나라 역시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글로벌 e-SAF 선점 경쟁 현황  미국(텍사스)  인피니엄(Infinium)이  생산한 e-SAF, 상업 운항에  첫 공급(2026.8)  텍사스 대형 공장 2027년 가동 목표  아프리카(남아공)  글로벌 플레이어 사솔(Sasol)  합성연료 독자 기술로 대규모 상업 생산 추진  중동(사우디아라비아, UAE)  유럽(EU 8개국 연합)  2030년 1.2% → 2050년 35% 의무화  5억 유로 펀드 조성 e-SAF 공장 건설 추진  계획 40여 개, FID 통과 0건  대한민국  과기부 CCU 메가프로젝트  산학연 10개 기관 참여 기술 개발 및 실증 추진  최저가 그린수소 기반 가격 경쟁력 확보  e-SAF 수출 허브 조성 글로벌 시장 공급 거점 목표



대한민국, K-연합군의 핵심 엔진 현대건설

글로벌 공룡들의 치열한 베팅에 대응하여, 대한민국 역시 정부 주도하에 국가 고유의 공급망을 지키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CCU 메가프로젝트'가 대표적입니다. 2030년까지 다양한 기술 트랙을 통해 차세대 친환경 연료의 상용화를 다각도로 밀어붙이게 될 이 컨소시엄에는 주관사인 LG화학을 중심으로 현대건설을 비롯해 산학연 10개 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합니다.

이번 과제에서 현대건설은 기술과 플랜트를 잇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글로벌 시장의 성패가 결국 실제 가동 가능한 공장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지어 올리는 엔지니어링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건설은 e-SAF 생산 공정 연구와 실증 플랜트 설계 검토 및 기술지원을 수행하며 플랜트의 안정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데 힘을 보탤 예정입니다. 또한 보유 연구설비를 활용해 생산 효율 향상 방안을 검증하고, 이산화탄소 전환 합성원유를 친환경 항공연료로 생산하기 위한 고도화 공정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하며 상용화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미니 인터뷰  :  e-SAF로 여는 미래 에너지 |  탄소포집활용연구팀 진상준 책임연구원  이번 e-SAF 실증 과제에서 현대건설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나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e-SAF 생산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개발된 기술을 실제 설비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공정을 설계하고 통합하는 일입니다. 포집된 이산화탄소와 생산된 청정수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연료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실험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실증 설비로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각 설비와 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그동안 축적해 온 기술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고자 합니다.  e-SAF 상용화 과정에서 건설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SAF 상용화를 위해서는 핵심 원료인 이산화탄소와 청정수소의 안정적인 조달과 공정 간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희 팀은 e-SAF 생산 공정기술을 중심으로 수소 생산 기술, 탄소포집 기술,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개별 기술이 실제 플랜트에서 안정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공정 설계 및 통합 엔지니어링 역량 확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e-SAF를 비롯한 미래 에너지 분야에서 현대건설이 그리는 비전은 무엇인가요?  앞으로도 e-SAF 실증을 비롯하여 탄소포집·활용(CCUS) 기술, 수소 생태계,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연계한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친환경 연료 생산부터 에너지 전환 인프라 구축까지 아우르는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겠습니다.



탄소 순환과 ‘지속 가능한 이동’이 그려낼 미래 비전

땅속 석유를 파내어 쓰던 시대를 지나, 배출된 탄소를 순환시켜 다시 비행기를 하늘로 띄우는 e-SAF는 이동의 편의와 탄소 감축이 양립하기 어려웠던 항공 산업의 오랜 난제를 풀어갈 현명한 해법입니다. 규제와 상업화의 장벽을 뚫고 실증의 시대로 나아가는 이 도전은 지구 환경을 해치지 않고도 경계 없이 연결되는 ‘지속 가능한 이동(Sustainable Mobility)의 시대’를 여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현대건설은 이 여정의 한복판에서 시공의 경계를 넘어, 저탄소 에너지 시스템을 설계하는 역할로 큰 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