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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③] SF영화 속 테크놀로지, 기술과 인간의 교감은 가능할까?

2022.12.16 4min 33sec

‘문명을 만드는 기술’로 불려온 건설은 사회의 존속과 발전 가능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핵심 역량과 기술은 어떠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요? 현대건설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의 시선을 통해 이를 진단해보는 칼럼을 기획 연재합니다.



영화가 상상한 미래 풍경


인공지능과 사람의 이미지


영화는 언제나 현실을 앞서갔습니다. 어쩌면 과학의 발전 속도보다 더 빠르게 미래기술을 연구하고 묘사해왔죠. <나 홀로 집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등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크리스 컬럼버스 감독의 1999년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는 요리와 청소를 하고 정원을 손질하는 등 가사 일을 돌보는 로봇이 등장합니다. 2005년의 미국이 배경이지만 어른들은 거실에서 3차원 화상 홀로그램으로 통화를 하거나 업무회의를 하고, 그 옆에서 아이들은 헬멧을 쓰고 가상현실에 접속해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가 되어 게임을 합니다. 


메타버스 세계를 가장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스마트글래스를 착용하고 오아시스라 불리는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 메타버스 세계를 가장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는 스마트글래스를 착용하고 오아시스라 불리는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


2045년을 배경으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7)에는 ‘오아시스’라 부르는 가상현실이 등장합니다. 사막에 지하수가 솟아나 식물이 자라는 비옥한 땅을 일컫는 오아시스는 ‘스마트 시티’라 부르는 미래도시의 또 다른 이름일 겁니다. 편리성을 넘어 안전과 행복을 지키고 궁극적으로 기술과 휴머니즘의 아름다운 조화를 꿈꾸는 미래도시의 비전이 바로 그 오아시스라는 단어 안에 있는 셈이죠. 영화 속 ‘오아시스’는 가상현실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조금씩 실재하는 현실로 바꿔가야 하는 미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다가가는 인공지능


인골지능 로봇의 이미지


오아시스를 꿈꾸며 발전시켜온 인공지능의 첫 번째 목표는 인간이 편리하고 안전한 생활을 누리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술 작품에서 형체를 지닌 로봇이 등장한 것은 100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로봇 개념의 시초로 평가받는 카렐 차펙의 1920년도 희곡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R.U.R)>에서 로봇은 기계장치로 된 인형이 아닌 화학 물질로 만들어진 인공 생물이었습니다. 카렐은 어느 날 사람들로 가득한 만원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무표정한 승객들을 보면서 로봇을 떠올렸고, 로봇이 인간을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리라는 염원을 담아 희곡을 썼습니다. 실제로 로봇이란 단어의 어원인 체코어 ‘로보타’는 일을 해 세금이나 토지세를 내는 농노를 의미하는 단어로, 로봇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길 바라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욕망의 판타지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인공지능(AI)을 갖춘 로봇 ‘스팟’을 건설현장에 투입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의 품질과 안전 관리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 현대건설은 인공지능(AI)을 갖춘 로봇 ‘스팟’을 건설현장에 투입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의 품질과 안전 관리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


기술 진화를 거듭하며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1980년대부터 영화는 다른 화두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인간과 로봇 간에 존재론적 문제가 대두되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회사 타이렐의 슬로건은 ‘인간보다 인간답게!’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2>(1991)에서도 용광로에 들어가 기어이 자신을 희생하는 T-800(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모습에서 ‘인간보다 인간답게!’라는 슬로건은 여전히 읽혀집니다.


영화 <그녀>에서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의 경청과 조언으로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 영화 <그녀>에서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의 경청과 조언으로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


아마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을 등장시켜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중 하나는 제목부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A.I.>(2001)일 것입니다. ‘판매’가 아닌 ‘입양’이 된 당대 가장 업그레이드된 로봇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은 한 부부에게 친 아들을 대신하는 가족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2013)에는 데이빗처럼 형태를 갖추지 못했지만 음성으로 존재하는, 아마도 이미 일정 수준 이상으로 현실화된 인공지능이 등장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목소리: 스칼렛 요한슨)의 경청과 조언으로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조금씩 상처를 회복하고 행복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A.I.>와 <그녀> 모두 형태는 다르지만 인류는 곧 인공지능과 함께 지내야 하는 시대에 당면할 것이며, 탁월한 기술은 그 자체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편으로 인공지능이 단순한 노동과 기술의 제공을 넘어 인간의 내면과 교감하는 ‘감성’의 차원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과의 공감을 넘어 공간과 도시로


2000년대 SF영화들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문제를 넘어 도시 전역의 시스템과 구조의 문제로 나아갑니다. 그 전까지 인간 배우가 연기하는 로봇이라는 존재가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서사의 중심에 있었다면, 보다 실질적으로 기술과의 ‘공존’이라는 화두를 던지기 시작한 셈입니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중심이 된 미래도시의 풍경이 우리 일상에서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대자동차가 CES2022에서 공개한 MoT(Mobility of Things) 가상도에는 로보틱스 기술로 모든 사물이 안전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미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 현대자동차가 CES2022에서 공개한 MoT(Mobility of Things) 가상도에는 로보틱스 기술로 모든 사물이 안전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미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


미래도시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영화는 알렉스 프로야스의 <아이, 로봇>(2004)입니다. 2035년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로봇은 택배를 배달하고 육아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개를 산책시키기까지 합니다. 로봇이 단지 ‘집안 일’ 수준을 넘어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진 것은 인공지능이 도시의 시스템과 완벽한 호환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시스템은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영화 속 미래도시에는 표지판이나 신호등이 사라지고, 목적지가 건물의 주차장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내비게이션도 필요가 없습니다. 최근 자동차 기술의 주요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자율주행 개념마저 초월한 완벽한 도로 시스템입니다. 덕분에 교통사고 우려가 해결되고 목적지에 도착한 자동차는 주차가 아니라 차곡차곡 ‘수납’이 됩니다. 앞서 만들어진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도 2054년의 미국 워싱턴 D.C.에는 무인자동차만이 거리를 누빕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현관이나 로비 없이 바로 사무실 내부와 연결되는 회사처럼, 자동차 문이 열리면 바로 주인공 자신의 집 거실이 등장합니다. 이는 ‘하이오티’ ‘카투홈, 홈투카’ 등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건설이 만들어가는 미래 모습이기도 합니다.




기술은 어느 방향으로 진보하는가


미래의 지구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살펴보면서, 미래 기술이 지향해야 할 이상향은 역설적이게도 지구 바깥을 배경으로 삼은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2009)에서 목격하게 됩니다. 2154년의 지구는 심각한 오염과 에너지 고갈로 죽어가고 있었고, 인류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대체 에너지원을 찾으러 판도라 행성으로 향합니다. 판도라의 나비족은 꼬리의 촉수를 통해 행성의 모든 동식물과 교감하고 있었고 에이와라는 영적인 존재를 섬기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행성의 구조 자체가 하나의 긴밀한 유기체로, 판도라를 뒤덮은 식물들은 그 뿌리를 통해 영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네트워크의 근원이자 주체가 바로 만물의 균형을 지키려는 에이와입니다.


오는 12월 14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되는 영화 <아바타>의 속편 <아바타: 물의 길>의 한 장면. 제임스 카메론은 미래기술의 비전을 교감과 연결에서 찾습니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오는 12월 14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되는 영화 <아바타>의 속편 <아바타: 물의 길>의 한 장면. 제임스 카메론은 미래기술의 비전을 교감과 연결에서 찾습니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판도라를 통해 제임스 카메론이 얘기하고자 한 것은 바로, 세계를 이루는 모든 생명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바타>는 자원의 사용과 재활용이라는 기존의 개념을 넘어 미래도시가 꿈꿔야 할 조화와 순환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데, 어쩌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행복을 짓는 건설이 지향해야 할 비전이라고 느껴집니다. 놀랍게도 나비족은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순환하는 ‘제로 에너지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물론, 텔레커뮤니케이션(Tele-communication)을 통해 기반시설이 인간의 신경망처럼 도시 구석구석까지 연결돼 있는 스마트 시티를 이미 구축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수십 년간 다양한 버전으로 미래도시의 모습을 그려온 SF영화의 거장이 바라보는 궁극적인 비전은, 기술 자체의 발전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고의 혁신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내가 사는 이 도시와 완벽하게 교감할 수 있을까. 기술은 어느 방향으로 진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아바타: 물의 길>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를 직접 제작하고 출연까지 했을 정도로 바다에 관심이 많았던 제임스 카메론은 해양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아바타: 물의 길>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를 직접 제작하고 출연까지 했을 정도로 바다에 관심이 많았던 제임스 카메론은 해양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라 할 수 있는, 무려 13년 만의 속편 <아바타: 물의 길>(2022)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판도라 행성의 바다로 나아갑니다. 여러 편의 해양 다큐멘터리를 직접 제작하고 출연까지 했을 정도로 바다에 관심이 많았던 제임스 카메론은 4K 화질로 우리가 지금껏 극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심해를 보여줍니다. 그동안 해양 미래도시 실현의 첫걸음으로서 ‘모듈형 수중 구조물’, 친환경 에너지의 전초기지인 ‘해상풍력’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인 현대건설이 주목할 만한 바닷속 세계가 펼쳐집니다. 전작 <아바타>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을 보여줬다면, <아바타: 물의 길>은 그 시선의 연장선에서 기술의 발전이 결국 대자연과의 공존으로 이어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제임스 카메론에게 바다와 육지, 그리고 개발(기술)과 공존은 애초부터 아무런 경계가 없었던 개념입니다. ‘물의 길’이라는 부제는 아마도 ‘기술의 길’이나 ‘공존의 길’로 바꿔도 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꿈꾸는 미래도시의 화두이기 때문입니다.



글. 주성철

영화평론가. 영화잡지 <키노> <필름2.0>을 거쳐 <씨네21>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우리시대 영화장인> <데뷔의 순간>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SBS <접속! 무비월드>, JTBC <방구석1열>을 거쳐 현재 OCN 영화 프로그램 <오씨네>와 유튜브 <무비건조>에 출연 중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현대건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현대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