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령해저터널 내 컬러 LED 조명 구간 ]

충남 보령의 대천항과 원산도 사이에 푸르게 펼쳐진 바다. 잔잔한 파도 위로 선박이 오가는, 여느 일상과 다름없어 보이던 지난 12월 1일. 해수면 아래 깊은 곳에서는 거대한 ‘길’의 역사가 새롭게 펼쳐졌습니다. 2010년 착공 이후 무려 11년간의 대공사 끝에 개통한 보령해저터널이 그 역사의 주인공. 대한민국의 새로운 혈맥으로서 사람과 삶의 기반은 물론, 물류의 흐름까지 원활하게 이어갈 보령해저터널을 찾았습니다.

해저터널의 세계 기록, 현대건설 기술력으로 쓰다

보령해저터널이 정식 개통한 12월 첫째 날. 이른 아침부터 터널 앞 도로 위에 차량들이 길게 줄을 이었습니다. 파주에서 부산까지, 대한민국 북·서·남의 끝을 잇는 국도 77호선의 마지막 연결선이자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해저터널을 기대하며 전국에서 모인 차량 행렬입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터널 진입을 기다리던 차량들이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깔끔하게 조성된 해저터널교차로를 지나 터널로 들어섭니다. 바닷속으로 들어간다는 긴장감도 잠시, 일반 터널과 다를 바 없는 내부 모습에 이내 익숙해지지만 완만한 경사를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해수면으로부터 무려 80m 아래 지점에 도달합니다. 총연장 6.927㎞ 중 순수 해저 구간만 5.2㎞인 보령해저터널의 가장 깊은 곳입니다.

[ 해저터널교차로를 지나면 나타나는 터널. 그 진행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

[ 보령에서 태안 방향 보령해저터널 입구 ]

보령해저터널이 이토록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난도 높은 공사를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5위’ ‘국내 최장’ 등의 기록적인 타이틀 속에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거센 바닷물의 흐름에 맞서고,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불규칙한 지질 특성에 대처해 온 지난 4000여 일의 사투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특히 착공부터 준공까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던 현장의 가장 큰 과제는 바로 ‘해수’. 해수로부터 안전하게 공사를 진행하기 위한 대장정의 시작은 지질의 특성을 완벽히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편마암, 화강암, 함탄층 등 지질이 변화무쌍한 지반을 안전하게 뚫기 위해 국내 해저터널 최초로 NATM(나틈·New Austrian Tunneling Method) 공법을 도입했습니다. 화약을 터뜨리며 암반에 콘크리트를 뿜어 붙이고, 암벽 곳곳에 쇠를 박으며 파 들어가는 NATM 공법이 지반 변형에 가장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발파와 굴착을 진행하기에 앞서서는 TSP(Tunnel Seismic Prediction) 탐사, 선진수평시추, 감지공 3단계로 지반 상태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파동이 반사되는 원리를 이용해 전방 200m의 지질을 예측한 후(TSP 탐사), 60m 앞에서 암반 샘플을 채취해 지반 조건을 확인하고(선진수평시추), 20m 앞에선 암반에 구멍을 내 유입 수량을 측정(감지공)하는 과정입니다. 보통의 경우 차수 그라우팅 공법으로 암벽 틈에 시멘트 충전재를 주입해 해수 유입을 막지만, 감지공 결과 1개의 구멍에서 분당 4L, 3개의 구멍에서 분당 8L 이상의 물이 흘러나오면 ‘IMG(인텔리전트 멀티 그라우팅·Intelligent Multi Grouting)’ 공법을 적용합니다. 현대건설이 개발한 IMG 공법은 차수 그라우팅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압력과 유량을 정밀하게 제어하고 기존 2개 주입공보다 많은 4~8개 주입공에 동시에 그라우팅할 수 있어 우수한 품질을 확보하며 공사의 효율도 크게 높였습니다.

[ 암반에 구멍을 내 유입 수량을 측정하는 감지공 과정 ]

[ 콘크리트 타설 전 작업을 위한 비계가 설치돼있습니다. ]

이에 더해 현장은 염도에 강한 내염해 CT 볼트를 적용하고, 숏크리트에 실리카퓸(Slica Fume) 혼화재를 첨가해 해수 성분의 지하수에 쉽게 부식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또한 터널을 둘러싼 콘크리트의 두께를 30㎝에서 40㎝로, 강도 또한 일반(24㎫)에서 고강도(40㎫)로 강화해 진도 6.0의 지진에도 끄떡 없고,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도록 터널의 내구성을 향상시켰습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11년의 대장정, 그 마침표를 찍다

터널의 최저점 부근, 그보다 더 깊은 곳에 건설한 대규모 집수정(集水井). 연결갱을 통해 내려다보니 새카만 바닷물이 무섭도록 출렁입니다. 철썩이는 소리에 비로소 바다 아래 서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해저터널의 특성상 완공 이후에도 암벽을 타고 흘러드는 해수관리가 또 하나의 핵심. 매일 시간당 407t 정도의 바닷물이 터널 측면으로 유입되는데, 이를 약 4800㎥의 대규모 집수정과 배수펌프를 통해 시간당 498t씩 터널 외부로 배출합니다.

현대건설은 그동안 축적한 토목공사의 경험과 노하우로 현장의 난제를 해결하며 심해에 안전히, 안전한 길을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망망대해의 바닷물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위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현장은 공사 중 안전관리를 위해 스마트 현장안전관리 시스템 하이오스(HIoS)를 적극 활용하고, 방수문 설치 후 주기적으로 모의 훈련을 진행하며 현장 안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이렇게 매 순간 철저하게 안전관리에 집중한 덕에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수문은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안전에 대한 집념은 터널 이용객을 위해서도 이어졌습니다. 비상시 차량이 유턴할 수 있는 차량갱을 660m 간격으로 10개, 사람이 대피할 수 있는 대인갱을 220m 간격으로 21개, 옥내소화전은 50m 간격으로 301개, CCTV는 150m 간격으로 92개를 설치해 만약의 경우에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비상시 사람이 대피할 수 있는 대인갱 ]

보령해저터널이 개통한 지 아직 한 달이 채 안 된 요즘. 주변 지역에는 이미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원산도는 물론 태안군 안면도에 이르기까지 보령해저터널을 달려볼 겸 나들이 나온 이들로 오랜만에 활기를 띤 것. 대천해수욕장에서 안면도 영목항까지 육지 따라 95㎞를 빙 돌아야 했던 길이 해저터널을 통하면 14㎞로, 90분 걸리던 거리를 단 10분 만에 주파할 수 있어 새로운 여행 루트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주민들 삶의 질입니다. 그동안 보령시 관할인 원산도 주민들이 시가지 병원이나 관공서에 가기 위해 여객선을 이용하거나 긴 여정을 떠나야 했던 불편이 한순간에 해소됐으며, 중학생이 되면 바다 건너로 유학을 떠났던 아이들도 집에서 통학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바닷물의 염분과 유기물질을 제거한 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기존과 달리 이제는 터널로 연결된 상수도관을 통해 육지로부터 깨끗한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됩니다.

길고 긴 터널을 달려 다시 환한 바깥 세상으로 나오면 양옆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에 마음이 탁 트입니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묵묵히 전진한 끝에 대한민국을 잇는 새로운 길을 하나 더 완성한 현대건설. 앞으로도 전 세계의 맥을 잇는 길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갈 예정입니다.

Mini Interview

김동균 현장소장 / 보령-태안 1공구 

해상 악천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 해저 교통 및 공간의 필요성이 커지는 시기에 이번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해저터널 건설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의 안전을 위해 유사시 대책 방안을 매뉴얼화한 것은 물론, 관계 기관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터널 내 작업자가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통신 시설을 설치하는 등 안전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신경 썼습니다. 우리 직원들 또한 안전관리에 긴장을 늦추지 않은 덕에 단 한 건의 인명사고 없이 대장정을 마무리해 더욱 기쁜 마음입니다. 대한민국 해저터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보령해저터널 건설에 힘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보냅니다.

권현수 사업수행팀장 / 보령-태안 1공구 

해저터널 공사 특성상 매일이 바닷물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터널 내로 유입되는 해수와의 사투 끝에 집수정에 물을 높이 퍼올릴 수 있는 고양정 펌프를 설치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터널 개통 이후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확률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고요. 또한 공사 중 임시 배수시설뿐 아니라 배수된 바닷물을 청정지역 수질 기준에 맞춰 방류할 수 있는 정화시설 구축에도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1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 회사의 자체 기술력으로 국내 최장 해저터널을 성공적으로 개통했다는 데 감회가 남다릅니다. 그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박인선 책임연구원 / 플랜트연구팀 

지하 구조물에서 유입되는 해수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한 배수시설, 배관 내 수충격 저감 시스템 설계 검토 등을 위해 현장과 협업했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문제점을 찾고, 더 나은 품질을 위해 설치한 설비를 뜯고 다시 설치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실제 운영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이슈를 하나씩 줄였던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국내에서 가장 긴, 그리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해저터널을 성공적으로 개통했다는 것과,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고생하신 동료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앞으로는 우리 손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터널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