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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칼럼] 중동에서 부는 ESG 혁신의 바람

2021.11.15 3min 31sec

esg칼럼


중동에서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 바람은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주요국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주요 산유국인 이들은 지난해 유가 폭락과 팬데믹을 겪으며 ESG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석유에 의존하는 기존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금융·물류·신재생에너지 등 신사업으로 경제를 다각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 아시아, 미국, 유럽 등에서 ESG 가치를 높이 보는 투자기업이 급증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 다각화를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요즘 세계시장을 움직이는 돈은 ESG 기준을 따릅니다. 중동에서 ESG 트렌드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입니다.


신재생에너지 투자 앞세운 ‘E’ 계획 속속
중동 각국의 ESG 트렌드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환경 분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와 UAE 등은 앞다퉈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계획을 내놓고 있습니다. 석유로 번 돈을 저탄소 투자 프로젝트에 쏟는 분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저탄소 기조를 이끌고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 3월 ‘사우디 녹색 계획’을 공표했습니다. 친환경 탄소 기술을 활용해 사우디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사우디 전기 생산량의 최대 50%를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계획입니다. 사우디 내에 나무 100억 그루를 심는 방안도 추진합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해 서울의 43.8배 규모(2만6500㎢)로 조성 예정인 미래도시 건설 프로젝트 ‘네옴’에는 세계 최대 규모 녹색수소(그린수소) 생산시설을 들이기로 했습니다. 수소에너지는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비교적 적게 발생해 차세대 주요 친환경 에너지로 꼽힙니다. 사우디의 목표는 네옴에서 2025년부터 녹색수소를 일평균 650t 생산해 이 중 상당량을 수출하는 것입니다. 수소에너지 650t은 수소버스 약 2만 대를 운행할 수 있는 양입니다. 올 초엔 왕세자의 측근인 압둘 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장관이 “사우디는 재생에너지 분야에 있어 ‘제2의 독일’이 될 것”이라며 “재생에너지 분야를 사우디가 선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탄소중립(넷제로) 기조 등에 발맞추겠다는 설명입니다.
사우디는 주요 구간에 아예 차가 다니지 않는 신도시도 조성합니다. 네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신도시 ‘더 라인’에서는 직선 길이 170㎞를 벨트 구역으로 정하고, 이 일대에는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게 할 계획이죠. 차로는 아예 만들지 않습니다. 학교, 병원, 레저 시설은 여럿 들여 주거단지에서 도보 5분 이내로 편의·생활시설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국영 사우디아람코를 통해서도 수소사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엔 수소에너지 유통 방법 대안으로 꼽히는 청색암모니아를 세계 최초로 수출했습니다. 생산 라인에선 수소 관련 시설을 늘리고 있습니다. 다운스트림(정제·석유화학) 공정 부산물인 부생수소(회색수소)로 수소사업 마중물 역할을 하고, 탄소 포집·저장 시설을 확대해 청색수소(블루수소) 생산량을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UAE 양대 토후국 중 하나인 아부다비도 친환경 에너지에 대거 투자하고 있습니다. 올 초 기준 운용자산 규모가 2310억 달러(약 270조원) 이상인 무바달라 국부펀드와 국영 석유기업 ADNOC가 앞장섭니다. 이 두 곳과 국영 지주회사 ADQ가 ‘아부다비 수소동맹’을 맺고 UAE에 수소에너지 생산기지를 세울 계획입니다. 전력, 모빌리티, 제조 산업 등 주요 분야에서 수소에너지 사용을 가속화할 로드맵도 개발합니다.
이들이 ESG의 ‘E’를 실현하기 위해 열을 올리는 이유는 현재와 미래 모두를 위해서 입니다. 일단 친환경 에너지를 키우는 것이 당장에도 이득입니다. 석유 정제 과정에서 나온 탄소를 포집·저장하는 방식으로 청색수소 생산량을 늘리면 최종 탄소배출량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기 때문이죠. ‘저탄소 석유’를 시장에 내놓는 식으로 타 산유국에 비해 석유제품을 차별화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최근 ESG 기준을 강화하고 있는 주요 금융기업의 투자를 꾸준히 유치하고, 장기적으로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차세대 먹거리를 확보해 석유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세계 에너지 시장 패권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차별 제도 폐지
사회적(S) 측면에 대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외국인 근로자 차별 제도로 알려졌던 ‘카팔라’를 지난 3월 중순 폐지했습니다. 정부의 새 노동개혁안을 통해서죠. 카팔라 제도에 따르면 고용주는 외국인 근로자의 거주 비자 발급에 대한 보증인 역할을 합니다. 고용 기간 처우부터 이직, 이사, 출국 등이 모두 고용주 마음에 달려 있었습니다. 이를 악용해 고용주가 외국인 근로자 임금을 체불하거나 계약 조건을 지키지 않는 사례가 꾸준히 나왔죠. 기업이 가혹한 근로조건을 적용하거나 학대를 받는 경우에도 근로자가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카팔라 제도가 폐지되며 사우디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이 대폭 향상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유만으로 노동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아닙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면 사우디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입니다. 외국인 비율이 38%에 달하는 사우디가 노동시장을 선진화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기가 그만큼 용이해져서입니다.


여성 임원 등용도 속속
기업의 지배구조(G)를 글로벌 기준으로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나왔습니다. UAE는 지난 3월 모든 상장기업에 대해 여성 임원을 최소 한 명 이상 두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을 발효했습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상대적으로 적은 중동권에서 혁신적인 조항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압둘라 빈 투크 UAE 증권거래소(SCA) 이사회장 겸 경제장관은 조항 발효 당시 “최소한의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UAE 시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업 이사진의 성별·인종 다양성을 보장하는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SCA는 2019년 말부터 UAE에 상장한 공공주식회사에 대해 이사회의 2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영국 런던 증시 상위 350개 기업(FTSE 350), 미국 나스닥 등이 내세운 목표와 비슷합니다. 20%를 채우지 못한 기업 이사회는 연간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통해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현지 언론 <The National>은 “UAE의 상장사 중 26%가 여성 임원을 두고 있지만, 상장사 임원직 총수 대비 여성 비율은 823명 중 29명으로 3.5%에 그친다”며 “SCA가 최근 여성 임원 관련 규정을 내놓은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UAE 정부가 ESG를 적극 강조하자 주요 기업들도 여성 임원 채용을 늘리고 있습니다. UAE 매체 <Zawya>에 따르면 아부다비 국영 석유기업 ADNOC은 이사회 22명 중 17명이 여성입니다. ADNOC은 지난해엔 여성 기술자를 1148명으로 늘렸다. 전년 대비 90% 급증한 수치입니다.


ESG 열풍, 협업으로 이어져
중동의 ESG 열풍은 수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가 올해 초 중동 지역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46%가 코로나19 이후 기업 개혁 계획의 일환으로 향후 3년간 ESG 경영과 지속 가능성 이니셔티브(Initiative·국민발안제)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답했습니다. 
글로벌 대기업들도 이 분위기에 맞춰 중동 현지에서 ESG 경영 사례를 늘리고 있습니다. 글로벌 카페 프랜차이즈 스타벅스는 빨대 없는 아이스 음료 잔을 중동·북아프리카 최초로 선보였습니다. 이후 UAE에서 영업하는 카페 여러 곳에서도 플라스틱 빨대를 줄이는 캠페인이 일었습니다. 대형마트 카르푸는 비닐봉투 사용을 줄이자며 재활용 장바구니를 여러 종류 내놨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현지 ESG 프로젝트와 협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미국 에어프로덕츠는 사우디 에너지 기업 ACWA파워와 최근 합작기업을 세웠다. 60억 달러(약 6조7000억원) 규모 수소 생산기지를 세우기 위해서 입니. 독일 지멘스에너지는 UAE 아부다비와 함께 UAE 마스다르 신도시에 녹색수소 시범 공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영국 금융 기업 바클레이스는 “중동에서 ESG 중심 모멘텀이 형성되고 있다”며 “ESG 목표를 기업 전략에 잘 융합한 기업에는 성공 기회가 그만큼 커졌다”고 분석했습니다.


글=선한결 <한국경제신문> 기자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본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